시부문 가작
거미의 터
민명숙(호주)
지붕 밑 서까래 사이
거미가 무허가 건물을 짓고 있다
나는 소심한 관공서 직원처럼
무허가 건물을 철거해 버린다
허공 어디에 뿌리가 있는 것일까
없애 버리고 나면 어느새
새집이 들어서 있고
어느새 긴 싹이 자라
잎 진 겨울나무를 깁고 있다
담벼락에 쌓여 있는 기둥들 틈에서
흐릿한 설계도면을 접었다 폈다 한다
비계 위에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울렁울렁 물결이 되어 출렁거린다
위태롭게 떠 있던 돛단배 하나
밧줄을 감았다 풀기를 반복하더니
허공 깊숙이 닻을 내린다
거미는 기둥 하나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