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다인재·다재다능 대한민국] ② 이중언어 가족환경 조성사업
가정 내 놀이 통해 엄마나라 언어 습득…가족 유대감 강화·자녀 긍정적 정체성 확립
이제 더 이상 국내에서도 다문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다문화가 진정 자리잡으려면 국내 인식이 개선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매해 다른 주제로 다문화가족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다(多)문화·다(多)인재·다(多)재다능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우리사회의 인재다’라는 주제의 다문화자녀 성장을 위한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정책브리핑에서는 다문화 인식 개선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어떤 정책의 추진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전남 함평군에 살고 있는 모마리(35)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에 온지 올해로 벌써 11년째인 그녀는 시부모님을 모시며 9살, 7살, 3살 세 아들까지 키운다. 이제는 농사도 집안일도 척척 해내는 억척 한국 아줌마가 다 됐다.
그런 모마리씨의 욕심이자 바람 중 하나는 아이들이 엄마 나라의 말인 인도네시아어도 자연스럽게 할 줄 알았으면 하는 것. “지금은 생각이 많이 변하셨지만 시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이 인도네시아어를 배우는 걸 탐탁치 않아 하셨어요. 한국어를 제대로 해야 할 나이에 괜히 두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다가 이도저도 못할까봐 걱정이 많으셨죠.”

모마리씨(가운데)가 막내아들 동운과 함께 이중언어 가족환경 조성사업 교육에 참여했다. 사토준꼬 코치가 이들 모자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이중언어교육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배우자가 결혼이민자의 모국어 사용을 격려하는 비율은 38.2%, 결혼이민자가 가족에게 모국어를 가르친 경험은 25.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등 소수언어 사용 국가 출신자의 이중언어 사용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결혼이민자, 가족에게 모국어 가르친 경험 25% 불과…소수언어 사용 환경 더욱 열악
또 지난 2012년 제2차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이주부모나라 언어 학습 경험은 이주부모의 출신국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북미/서유럽, 대양주 출신 부모를 둔 자녀의 이주부모 언어 학습경험은 76.1%에 달하는 반면 캄보디아 출신 부모를 둔 자녀는 3.1%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혼이민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 출신 부모를 둔 자녀들도 17.7%에 그쳤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글로벌 사회 인재의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됐다. “이중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가정 환경은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사토준꼬 전남 함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중언어 코치는 다문화가족의 특성이 그 자녀들에게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남 함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시범사업에 참여한 결혼이민자들이 사토준꼬 코치의 지도로 아이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동요를 배우고 있다.
이런 다문화가족 자녀의 강점을 키우기 위해 정부도 발벗고 나섰다. 올 8월부터 서울 성북구, 전남 함평, 충남 당진 등 전국 11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가족 이중언어 가족환경 조성사업’을 시범 실시한 것이다. 시범사업은 부모들을 대상으로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시범사업을 위해 함평군은 20개월부터 36개월까지의 영아를 두고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한 영아반 5가구와 만3~5세의 아동이 있는 유아반 5가구를 선정했다. 조성사업은 아빠·엄마를 대상으로 가족의 역할을 배우는 부모교육, 그리고 가정 내에서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놀이와 게임 등의 방법들을 알려주는 부모-자녀 상호작용 교육,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확인하는 가정방문, 서로의 고충과 정보를 공유하는 자조모임으로 구성돼 10월까지 이어졌다.
올해부터 다문화가족 대상 ‘이중언어 가족환경 조성사업’ 시범실시
“사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다문화가족 자녀들에게 엄마나라의 언어를 가르치는 사업인 언어영재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그런데 언어라는 게 수업에서 잠깐한다고 느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 보다 이중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죠.”
이 같은 교육을 거치면서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언어선생님이 된다. 많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출신국가의 언어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사토준꼬 코치의 설명.

사토준꼬 코치가 가정방문을 하는 날에는 온 가족이 총출동해 함께 아이의 이중언어 교육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가르친다고 교재를 갖추고 강의방법을 익히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과정에서 엄마나라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교육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하면서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를 가르쳐주는 데 초점을 뒀어요”
조성사업은 단지 언어영재를 양성하는 성과만 거두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와 관계를 맺으며 정서적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 “엄마들도 모국의 언어를 쓰면서는 속 깊은 얘기까지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그럴때 아이가 엄마나라 말을 할 줄 알면 아무래도 서로 정서적으로 교감하기가 쉽죠. 아이의 정서적 성장을 도울 수 있어요.”
놀이 통해 자연스레 이중언어 습득…가족 유대감 강화·아이 정서적 성장에도 도움
아직 한국어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두가지 언어를 동시에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이 같은 질문에 사토준꼬 코치는 추성훈 선수의 딸인 추사랑의 예를 들었다.

사토준꼬 전남 함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중언어 코치. 그녀 역시 일본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추사랑의 경우 처음에는 일본어로만 소통했는데 한국어 교육을 받으면서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등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한국어로 대화를 해요.
어린 나이라서 혼란스러운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환경을 만들어 주면 놀이처럼 스폰지에 물이 베듯 그렇게 두가지 언어를 동시에 받아들인답니다.”
실제 함평군의 시범사업에 참여한 가족들에게도 작지만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모마리씨는 “세살짜리 막내가 제가 하는 인도네시아어를 알아듣고 반응을 하더라”는 얘기를 전했다.
한 번은 네 살 터울 위의 형을 부르는데 까까(Kakak)라고 인도네시아말을 써서 시어머니가 과자로 해석했던 적이 있다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런 자녀들을 보며 신기하고 대견하다는 마리씨다.
또 일본에서 온 카요꼬(37)씨는 “시범사업 참여를 통해 남편이 일본어는 나랑 상관없는 거라는 생각을 바꿔 아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본어를 배우더라”며 무엇보다 남편이 변한 모습에 흡족해했다.
다문화가족 자녀 긍정적 정체성 확립위해 반드시 필요…조성사업 내년 전국 확대실시
유엔(UN)의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f the Right of Child)에는 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와 문화를 존중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비단 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문화가족 자녀의 긍정적인 정체성 확립과 가족의 정서적 유대감 강화를 위해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다문화가정 내 이중언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처음 시작한 이중언어 조성환경 시범사업은 지난달 마무리됐다. 정부는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이중언어 가족환경 조성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모마리씨는 “아이들이 두 나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두 개 나라의 언어도 잘하고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모마리씨의 바람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