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학 학술대회에 참석한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학교 교수는 한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통신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 “유럽 지역만 보더라도 한국학 전공자들은 턱없이 부족하며 학술 교류도 이제 걸음마 단계다. 한류가 외국 현지에서 지속․ 발전하려면 한국학 전공자가 많아야 한다. 유럽에 이런 인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했다. 한국서 일할 때 그의 사진을 한번 찍어 준 인연이 있었고 러시아어를 못해 말 붙일 사람이 당시 박노자 교수뿐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일상적인 대화에서 쉽게 쓰지 않는 과대망상(誇大妄想)이라는 사자성어를 귀화 한국인인 그에게 들은 후 이 어려운 단어는 ‘충격요법’이었는지 자주 머리에서 꺼내 쓴다. 3년 전의 이야기다. 한류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결론에 동감하지는 않는다. ‘한류 열풍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다. 자신의 이념과 사고에 따라 한류 현상이 ‘열풍’이 될 수도 ‘아지랑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 때리기’로 유명하다. 러시아 출신(구소련, 레닌그라드)이다. 사회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이행 과정의 혼란 속에서 자란 세대다. 다년 간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다 보면 한국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대한민국과 마주한다.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대기업들, 특히 소프트파워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은 눈부시다. 이러한 점에서 박노자 교수의 한류 과대망상(誇大妄想) 발언에 동감하지는 않지만, 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과대망상 주장’은 한국학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쓴소리’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든, 어쨌든 그의 ‘시선’과 ‘성찰’, ‘쓴소리’는 건전한 한국 사회 발전에 밑거름되고 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만성화된 아킬레스건을 무자비하게 건드리지만, 그는 한국학을 전공한 러시아 출신 한국학자이며 노르웨이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며 한국의 세계화에 주춧돌을 놓고 있는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한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든 아니든 공공 및 민간 외교의 주축이 될 차세대 유럽 한국학 학자를 양성하는 학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의 한국 관련 활동 전반이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 권역과 러시아 CIS 지역에 박노자 교수 같은 ‘한국빠’는 얼마나 될까? 이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주러 한국 대사관에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를 찾았다.
한류 이끌 러시아 차세대 한국학 전공 인재 양성하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
한류가 세계로 확산하면서 한국학 전공자들도 느는 추세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전 세계 차세대 한국학 학자들은 공공 및 민간 외교뿐 아니라 한류의 미래를 견인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이 재원 양성을 지원하는 공공 외교 기관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이다. 베를린을 비롯해 워싱턴, LA, 북경, 모스크바, 하노이 등 전 세계 6개 7개 지역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동유럽 권역과 CIS 지역에서 한국학 활성화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국국제교류재단 김회길 모스크바 사무소장을 만났다.
그는 2005년 모스크바 제1대 사무소장으로 봉직했으며 2012년 모스크바 사무소 소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모스크바 사무소는 올해로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 김회길 사무소장>
***다음은 김회길 소장과의 일문일답
Q. 그간 한국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가 해온 핵심적인 사업은
한국학 연구 활성화와 학문적 토대 마련이다. 한국학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발전하려면 기반이 필요하다. 도약을 위한 발판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바로 네트워크 구축이다. 모스크바 및 러시아 연방, CIS 지역 한국학 및 한국어 수업을 개설한 학교 간 교류에 국제교류재단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각각 센터들이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어렵다. ‘만남의 광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Q. 정기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는 모스크바 내 대학 교육 기간 및 연구자들, 교수들 간 상호 연계 및 협력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학 행사 지원을 비롯해 한국의 정치-역사-문화-경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로 정기적인 포럼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전 러시아 한국학전공자 세미나’가 있다. 유럽한국학교육자협회(EAKLE)와는 공동으로 유럽한국어교육자협회 정기워크숍을 실시한다. 권역은 모스크바에 한정하지 않는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CIS 지역과 동유럽 권역까지 광범위하다. 하부 프로그램으로 모스크바 지역 한국학 전공자들에 장학금은 물론 어학연수, 국제학술회의, 학생 세미나 등에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 러시아 학자들이 집필한 「한국학 총서 제10권」 발간이다.
Q. 한국학 중심 지원 사업만 진행하고 있는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 사업은 한국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화교류는 물론 한국학 관련 공공외교, 출판 등 러시아 CIS 국가와 동유럽, 한국 간 교류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화적 커리큘럼도 중요한 교류재단 프로그램이다. 문화 프로그램은 민간 교류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원과 외교통상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제교류재단이 펼치고 있는 핵심 사업의 방향과 목표는 다르지만 공공외교분야에서 문화교류는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4년 진행한 '한국 비보이와 전통 타악 그룹' 공연 같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한류 프로그램이 좋은 예다.
Q. 국가의 새로운 미래 전략 가운데 하나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다. 러시아 한국학 학자들 현황은?
외국 한국어·한국학 강좌 개설 대학 수는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한국 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90년대 초 32개국 152개교에 불과했으나 현재 94개국 977개교에서 한국어 및 한국학 강좌가 개설됐다.) 현재 동유럽·CIS국가에 23개국 106개교에서 한국학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 6개 대륙 가운데 러시아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지정학적으로 한국에 중요한 국가이지만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나 정치적 현안 문제 등으로 아직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 또한 정치 경제 중심의 거시적인 교류만이 중시돼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관련한 미시적 차원의 교류와 교육이 부족했다. 정치적 경제적인 교류만큼이나 인적·문화적 교류가 중요하다. 점차 개선되리라 본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차세대 한국학 전공자들은 정치, 경제뿐 아니라 역사와 인문사회과학, 특히 한국의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 만화를 오프라인에서 서로 공유하는 걸 봤다. 한류가 어필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과 무관치 않으며 한국학 전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스크바 사무소에서는 정기적으로 러시아어판 ‘코리아나’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또 대사관과 러시아 레닌 국립도서관 동방센터에는 대사관과 국제교류재단이 기증한 5천여 권 이상의 한국 관련 서적들이 있다. 동방센터는 한국학 또는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학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또는 한국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 자주 찾는 장소가 됐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서적을 기증한 덕분에 모스크바 국립도서관 동방센터는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가 됐다>
Q.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해달라
국제교류재단이 가장 중점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차세대 한국학자 육성 사업’이다. 한국학 및 한국어를 전공하는 전체 학생 가운데 150여 명에서 200여 명 정도 꼽고 있다. 이 가운데 15명 정도 학생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들이 분명히 앞으로 한러 교류에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한국과 러시아 간 정치문화사회경제 교류 협력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 및 전략을 모색하는 러시아 지한파 모임인 ‘러한 소사이어티’가 지난해 출범했다. 한 러 간 국가 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해나갈 것이다. 우리가 지원 육성하는 차세대 한국학자들이 앞으로 훗날 지한파 모임의 구성원이 되리라 본다.
Q. 한반도 전문가 및 저명인사들의 강연 포스터를 봤다
올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프로그램인 ‘렉처 시리즈’다. 국제교류재단에서 초청한 한국학 전문가들이 남북한 문학 언어 발전의 갈래에서부터 한국의 건축 예술, 세계 경제 속 한국,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강연은 발레리 수히닌 前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 등 저명인사들이 맡았다. 강의는 매번 만석이다. 현재 모스크바 내 한국학 개설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앞으로 폭을 넓혀 한국에 관심이 있는 현지의 일반인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소장 김회길)가 올해 핵심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렉처 시리즈’ 프로그램에
참석한 모스크바 소재 대학 한국학과 학생들이 수히닌 북한 주재 전 대사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모스크바 사무소(소장 김회길)가 올해 핵심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렉처 시리즈’에서 수히닌
북한 주재 전 러시아 대사가 남북 문학 언어의 발전 양상을 중심으로 강연하고 있다>
Q. 지속 가능한 한류 및 한국 문화 전파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인재양성이다.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과 더불어 공공외교, 민간외교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공공외교와 민간외교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차세대 한국학 학자 및 인력 양성이 꼭 필요하다.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 영화 등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국학 전공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애정이 자라 사랑이 되고, 한러 교류 인재가 된다면 그들은 처음에 품었던 그 애정은 한류 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