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언어를 공부하니? 난 사랑하는데. 한국어도 드라마 보듯 즐겨봐'
지난달 한글날 즈음 52개국 130여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수학하는 우수학생 124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외국어 습득은 실리적인 면이 강하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부쩍 늘고 있는 이유 중에는 한국 기업들의 선전도 한몫하고 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영어가 스펙의 기본 요소가 됐듯, 러시아에서 삼성이나 엘지 같은 글로벌 회사에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세종학당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앞에서 언급한 기업에 입사한다고 해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업무를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세종학당을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모스크바에 한해) 유독 한국말을 잘하는 (여기서 한국말을 잘한다는 것은 점수로 환산한 평가기준이 아닌 대화) 학생들을 관찰해보면 실리를 위한 한국어 습득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K-POP을 좋아한다거나 한국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대개 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사랑하는 방식은 많이 듣고 많이 따라 하는 것이다. 마치 처음 말을 배우는 아기들이 엄마의 말을 듣고 옹알거리며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세종학당 장학프로그램인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 한국어·한국문화 체험 한마당’에서 한국어 말하기 대회 1위를 한 가르캅축 안나(21·여)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3년간 모스크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물은 적이 있다. (통신원 본인도 외국에서 공부하는 입장이라 안나에게 ‘외국어 학습법'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한국어 오래 공부했나 봐'
“2년 좀 넘었어.'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해? 공부를 많이 하나?'
“아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세종학당 수업은 빠지지 않고 다녀'
“문법 공부나 단어는 어떻게 외워?'
“단어? 어떻게 외우느냐고? 그냥 문법이나 단어는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해'
“어떻게 공부해?'
“공부 안하는데. 그냥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따라 해'
“아…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왜?'
“왜? 그냥 재미있잖아. 넌 재미없니?”
그러고 보니 통신원은 한국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은 벽을 쌓고 산 지 오래됐다. 자국 콘텐츠에 흥미를 못 느끼는데 외국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녀는 재미있다고 했다. 통신원은 외국어 공부가 고역인데 말이다.

세종학당 우수학습자로 초청받기 위해서는 각국 세종학당에서 진행하는 한국어 대회에서 수상해야 한다. 그녀는 세종학당에서 열린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세종학당에서는 1위와 2위 수상자에게만 한국문화 체험 기회를 준다. 안나는 사실 해당사항이 없었다. 2위를 했던 학생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세종학당 관계자들이 논의를 거쳐 3위를 한 안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녀는 이번 대회를 위에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다. 그냥 꾸준히 처음에 한국어를 좋아해서 시작했을 때부터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많이 보고 듣고 따라하고, 학교 수업에 빠지지 않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그렇게 한국어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실천해왔을 뿐이다.

지난 15일 모스크바 원광 세종학당에서는 제7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 최종전이 열렸다. 지난해부터 LG 전자가 대회 후원 스폰서로 참가했다. 안나가 6회 째 출전해 3위를 한 후 한국에 다녀왔으니 딱 1년 만이다. 모스크바 원광 세종학당에서는 10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작문(쓰기 분야)’을 시작으로 ‘읽기, 듣고 따라 하기(듣기, 발음)’, ‘말하기’ 등 4개 언어영역을 7개 수준별로 실시했다. 최종전에 출마한 5명 가운데 2명이 선발되면 세종학당 장학프로그램인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초청 한국어·한국문화 체험 한마당’ 참가 자격을 준다.
세계 각국에 소재한 48개국 90여 세종학당은 동일한 교재와 세종학당 학사 규정에 따라 운영되고 있지만, 각국의 운영 여건에 따라 수업 커리큘럼이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 원광 세종학당의 특징은 ‘철저한 학사 관리’ 그리고 수업과 학교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를 연동해 꾸준히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 향상을 도모하는 커리큘럼을 지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기별로 진행되는 수업 외 학예 발표회나 종업식, 한국어 대회에서 학생들은 반별로 행사를 준비하면서 실전 훈련을 받는다. 그간 쌓은 한국어 실력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위키 백과는 세종학당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세종학당은 외국어 또는 제2 언어로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교육하는 기관이다. 문화 상호주의에 입각한 문화 교류 활성화, 외국어 또는 제2 언어로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용 한국어 교육, 한국어교육 대표 브랜드 육성 및 확산을 목적으로 하며, 2014년 현재 전 세계에 걸쳐 55개국 130개(http://www.ksif.or.kr/business/locSejong.do)가 개설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서 세계와 한국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할 인력들이 배출될 것이라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안나 같은 친구들이 러시아 한류에 길을 확 터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됐건 오늘도 누군가 집에서 또는 학교에서 한국어 교과서를 펴들고 공책에 한글 자모를 적는 러시아 학생들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한국어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러시아에서 계속되고 있다.
※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및 원광 세종학당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