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 수호통상조약 130주년’, ‘한러 수교 24주년’인 올해와 내년을 한국과 러시아는 상호 방문의 해로 정했다. 양국은 정부 지원 하에 전례 없던 문화교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모스크바에서 ‘한러 상호 방문의 해’ 선포식을 개최한 이후,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단기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했다.
아직 눈에 띄는 구체적인 성과는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시나브로 결실은 쌓이고 쌓여 열매를 맺을 것이다. <한러 상호 방문의 해>를 맞아 어느 때보다 바쁜 곳이 있다. 바로 주러 한국문화원(원장 양민종)이다. 주러 한국문화원은 지금까지 공식적인 지면을 통해 소개된 적이 없다. 재외 문화원의 특성이 그렇다.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행사 대부분은 주러 한국문화원 협력을 통해서 이뤄진다. 일례로 K-POP 공연, 한국영화 페스티벌, 한식 행사 등 각종 한러 교류 프로그램 시작 단계에서부터 진행, 마무리까지 주러 한국문화원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추진되는 공식적인 행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러시아 한국문화 수출 전진기지로 활약하고 있는 주러 한국문화원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주러 한국문화원 전경>
주러 한국문화원은 2006년 9월 개원했다. 올해로 8년째다. 러시아 한국문화원은 개원 이래 문화 강좌, 한국어 보급, 한국 영화상영, 자료실 운영 등 상설 문화프로그램을 지속해서 확대하는 한편, 러시아 사람들의 문화적 수요와 이해를 도모하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공관 특성상 독립 건물을 마련하지 못해 몇 차례 이전해야 했지만, 한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 간 문화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면서 머지않아 독립 공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문화원 설립 취지대로 주러 한국문화원 역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문화홍보 역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한류에 힘입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1만 2천권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원 도서관>
1만 2천여 권에 달하는 도서를 갖춘 도서실, 어학강의실, 상설전시실, 이벤트 홀 등을 갖추고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전하고 있다. 주러 대사관에 편입된 재외 문화원 특수성 때문에 자칫 정부 홍보 수단으로 취급되는 관료사회의 편협한 시각이 존재하기는 하나 한국 문화의 소프트파워를 선보임으로써 그간 서구 중심 문화 유입에 따른 교류의 역조현상을 해소하는 데 있어 모스크바에서 큰 공헌을 하는 곳이 주러 한국문화원이 아닌가 싶다.
주러 한국문화원은 치스토 프루드늬 불바르(чистопрудный бульвар)에 소재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맑은 연못’이다. 문화원은 취스트예 프로디 지하철역에서 내려 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접근성이 좋아 문화원을 찾는 현지인들도 전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문화원을 찾아가는 도로변은 공원을 중심으로 양쪽에 늘어선 유럽풍 건물이 인상적이다. 200여 년 전 이곳에는 다양한 사회 계층이 살았다고 한다. 황제를 비롯해 모스크바 귀족, 부유 상인, 외국인들이 살았던 건물들이 현재도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여러 나라의 재외공관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이질적인 건축 양식들이 눈에 띈다. 지하철역에서 공원을 지나 연못이 시작되는 곳에 주러 한국문화원 독립 건물이 있다.
문화원 주변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90년대부터 이곳은 문화의 상징이 됐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 불안을 느꼈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골목에는 문학인들이 활동하던 장소들도 여럿 있다. 아직도 자주 카페에서 시 낭송회를 하는데 풍경이 서울 종로와 비슷하다. 가죽 잠바에 체인을 두르고 높이 세운 모히칸 헤어스타일한 친구들도 간혹 보인다.
한국인들은 스킨헤드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걱정할 건 없다. 자신들의 열정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안전한’ 러시아 젊은이들일 뿐이다. 주러 한국문화원은 이런 대표적인 모스크바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주러 한국문화원은 지하 1층 지상 3층 총 4층의 독립 건물이다. 지하는 도서관을 비롯해 한국어 수업 등이 이뤄지는 교육시설이, 1층은 전시실과 사무실, 북 카페가, 2층은 각종 행사와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형 홀을 갖추고 있다. 문화원에 들어서면 한편에는 한국의 회화, 조각, 도자기, 공예품을 전시한 상설 전시장이, 다른 한편에는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책상과 북 카페가 있다. 공관이 특성상 폐쇄적인데 반해 한국 문화원은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문화원 내 전시실 및 북 카페>
3대 주러 한국문화원 원장인 양민종 부산대 교수가 ‘문화원은 열린 공간’이라는 인식을 전환을 꾀한 덕분이다. 양 원장은 폐쇄적인 기존의 공관 개념을 버렸다. 문화원을 열린 공간으로 십분 활용하기 위해 사무실로 사용하는 공간을 북 카페로 만들었다. ‘만남의 광장'같은 분위기다. 그의 문화원 운영 비전은 ‘러-한인 간 상호 교류의 장’, ‘아이티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한국-러시아 간 문화연대 강화’, ‘한인 사회와 문화원 간 소통’, ‘지속 가능한 문화 전파’ 등이다.
그는 “동제 중심의 관리제도에서 벗어나 누구나가 문화원장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양 원장을 비롯해 한국인 및 러시아 일반 직원 등 총 9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성과관리에 바탕을 둔 행정제도나 일회성 행사 중심의 단순 업무, 의사결정 단계를 단순화하는 조직 운영방식을 지양하고 체계적, 조직적,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해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3년 전 취임 당시 양민종 원장은 “재외문화원은 특성상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러시아 주재 한국문화원이 한 해 추진한 문화 사업만 53개에 달한다. 소수 직원들이 소화하기에는 행사가 너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는 대신 천편일률적으로 진행해 오던 행사들을 카테고리로 묶어 중장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문화 업무를 추진해왔다. 그 결실 중 하나가 한식 강좌다. 또한 매년 모스크바 내 영화 상영관에서 일주일간 진행되는 한국영화제도 이에 포함된다.
주러 한국문화원은 정기적으로 문화원에서 한국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소수 한류 마니아가 아닌 러시아 현지인들이 쉽게 관람할 수 없는 한국영화를 현지 극장에서 상영해 러시아 영화 애호가들에게 단비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연례행사가 된 K-POP 페스티벌과 한류 커뮤니티 지원 등은 양민종 원장 취임 이후 문화원이 이룩한 성과다.

<세종학당 수업 모습>
이러한 문화 프로젝트 외 개별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은 단연 세종학당 운영과 전통문화 수업이다. 주러 한국문화원에서는 매일 저녁 7시에 한국어 수업이 초-중-고급 과정으로 진행된다. 매년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록하지만, 공간상의 문제로 테스트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학생을 뽑는다. 이렇듯 주러 한국문화원은 한국문화 전파는 물론 미래 한국과 러시아 간 교류에 닻이 될 인재 양성에 오늘도 분주하다.
※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