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연합(EU)은 1985년부터 매해 유럽 시민 간의 교류를 목적으로 ‘유럽 문화 수도' 도시를 선정해오고 있다. 문화 수도로 선정된 도시는 이를 큰 영광으로 알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문화 인프라를 정비하며, 1년 내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화 이벤트를 기획해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2015년엔 벨기에 불어권 지방 도시 몽스(Mons)가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어 인구 9만여 명의 작은 도시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주목을 받고 있다.
<2015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된 벨기에 몽스(Mons) - 출처: 몽스 문화 수도 조직위원회 제공>
몽스(Mons) 문화 수도 조직위원회는 약 7,000만 유로 (한화 8억4,7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5년 연간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 중인데, 올 10월 열릴 <40세 이하 청년 작가 초청전>에 재벨 한국 작가 김정희 씨(32세)가 초청 작가 50인 안에 선정되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유리를 재료로 한 조각이라는 낯선 장르의 예술을 선보이는 김정희 작가는 현재 브뤼셀 한국 문화원에서도 개인전(3월 11일~4월 18일)을 열고 있으며, 브뤼셀 라디오 채널 FM Bruxelles에 인터뷰가 보도되는 등 벨기에 현지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겹경사를 맞은 이 청년 한국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김정희 작가의 작품은 미니멀한 추상 조각의 형태를 띈다. 사진은 브뤼셀 한국 문화원 개인전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Q. 유리로 조각을 한다는 것이 생소합니다. 흔히 유리 공예하면 샹들리에처럼 화려한 장식품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브뤼셀 한국 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지난 해, 브뤼셀 한국 문화원에서 전시 공모를 냈습니다. 참가 신청을 한 작가 포트폴리오를 벨기에 왕립미술관 현대미술관 디렉터 Frederik Leen, 아트 페스티발 ‘유로팔리아’의 수석 큐레이터 Dirk Vermaelen 두 분이 심사를 했고, 감사하게도 저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들은 제가 평소에 천착하고 있는 주제를 풀어낸 것입니다. 저는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3요소가 관객, 공간, 오브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따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례로 이번 전시 대표작인 파란색 기둥 형태의 작품 제목은 ‘갈대'입니다. 이름은 갈대이지만 오브제인 조각품은 흔들리지 않아요. 대신 그 안에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절단선들이 관객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였다 안보였다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갈대처럼 움직이면서 작품을 보게 됩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오브제가 관찰을 당하는 ‘대상'에 그쳤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오브제가 관객에게 영향을 주는 ‘주체'로 기능합니다. 이런 유기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벨기에 문화 정보 포털에 소개된 김정희 작가 개인전 - 출처: www.agende.be>

<브뤼셀 중앙역 지하철 역에 게재된 한국문화원 전시 광고물 - 출처: 김정희 작가 제공>
Q. 유리라는 재료에 매료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한국에서 서울 미술고등학교 회화과를 다니면서 각종 재료들을 경험했는데, 다루기 힘들고 만드는 데 오래 걸리는 재료라는 이유로 유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희소성이 좋아서 유리와 친해지기 시작했고, 남서울대학교 유리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유리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유리 작업에는 여러 가지 테크닉이 있는데요. 제가 쓰는 방법은 8mm 정도 되는 판유리를 유리칼로 자르고 에폭시 접착제로 붙여가며 형태를 만든 뒤, 표면을 연마하는 방식입니다. 2007년부터 이렇게 스케일 큰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엔 대한민국선정작가전 운영위원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선정작가전'에 뽑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하기도 했고, ‘부산국제환경예술제' 단체전에도 선정이 되었고요. 지난 해에는 WCC(World Crafts Council 세계 공예 협회) 소속 작가가 되었습니다. (홈페이지 http://www.wcc-bf.org/membre/kim-jeoung-hee) 다루기 힘든 재료이지만 유리만 낼 수 있는 그 생소한 느낌이 좋아 계속 유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벨기에로 오시기 전에는 프랑스 3대 예술대학이라고 불리는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브뤼셀 왕립예술대학(Beaux-Arts)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계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유럽 문화 수도 Mons가 초청한 청년작가로 뽑히기도 했고요. 안정적으로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럽에서 한국 예술가로 살아가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석사 과정을 밟고 있어서 학생 비자로 벨기에에 거주할 수 있지만, 학과 과정이 끝나고 본격 전업 작가의 길로 뛰어들기 위해선 예술가 비자 취득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프랑스나 벨기에 모두 이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수 년간 노력해 겨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한국 청년 예술가들이 정작 성과를 수확해야 할 시기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전시 공간입니다. 청년 작가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전시회를 많이 경험해야 하는데요. 전시 공간을 얻는 일이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지난 해 11월, 벨기에에 거주 중인 청년 작가들이 연합해 ‘벨기에청년작가회’를 결성한 것도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보기 위함이었죠. 실은 프랑스청년작가회와 파리 한국문화원이 내는 시너지에 감명을 받아 이런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열린 벨기에청년작가회 첫 전시 포스터 - 출처: 김정희 작가 제공>
Q. 재불청년작가회와 파리 한국문화원이 내는 시너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순수 미술단체인 재불청년작가회는 1983년 결성되었는데요.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매해 정기전을 엽니다. 벌써 30년의 전통이 되었죠. 이 정기전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 다른 지방의 기획전과 초대전에 참가할 기회를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정기전 수준이 회를 거듭할수록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파리 한국문화원의 전상아 큐레이터의 힘이 컸고요. 전상아 큐레이터는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인 청년작가들 사이에선 큰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Q. 벨기에청년작가회는 이제 막 신설된 단체라 전시 공간을 얻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프랑스 선례가 큰 참고가 되겠네요.
이제 막 발을 뗀 신생 단체이지만 다행히 독일 브레맨 미술대학교 소속 갤러리에서 저와 조각을 하는 최승화 작가, 회화를 하는 오민지 작가가 3인전의 형태로 2월 말에 2주간 첫 전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벨기에청년작가회도 재불청년작가회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한국 문화와 한국 예술인들을 현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저희의 작은 출발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